절대왕정은 16세기로부터 시작된 근대적 발전의 소산이었으나 거기에는 아직도 많은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러한 봉건적 잔재를 제거하고 근대적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모든 분야에서 활발해졌는데, 그 가장 극적인 표출이 프랑스혁명과 같은 시민혁명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미국 혁명도 영국 식민지의 단순한 독립전쟁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혁명이었고 새로운 근대적인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18세기말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미국 혁명보다 훨씬 더 격렬한 양상을 띤 전형적인 시민혁명으로서 시민계급의 주도하에 귀족적이고 봉건적인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근대적인 시민사회 건설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 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무렵 섬날라인 영국에서는 좀 더 조용하게 그러나 그것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산업상의 큰 변혁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산업혁명은 자본주의를 완성시키고 농업적이던 유럽 사회를 산업사회로 전환시킴으로써 유럽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나아가서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은 14, 15세기에 싹트고 16세기 이래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한 유럽의 근대적 발전, 즉 근대화를 완성시켰으며, 19세기에서 오늘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적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1. 미국 혁명
1) 식민지시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영국의 식민활동은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스튜어트 왕조의 전제정치와 종교적 탄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했고 그 밖에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국왕으로부터 특허를 얻어 식민지 경영에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이리하여 18세기 초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동해안 일대에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13개 식민지는 저마다 성격을 달리했으나 초기부터 빈부의 격차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고, 사회적 지위의 불평등은 있었으나 유럽에서와 같은 신분제적인 구별은 없었다. 남부에서는 노예를 사용하는 농장 경영이 성행했고, 북부에서는 자영농민층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상공업도 발달했다.
영국은 식민지에 총독을 파견하고 있었으나 별로 간섭하지 않고 방임하는 상태였고, 식민지는 식민지 의회를 중심으로 상당한 자유와 자치를 누려 왔다. 식민지 의회는 비교적 민주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선거권에 토지소유라는 자격제한이 있었으나 어떤 지자체의 경우 백인 성년남자의 80%가 투표권을 행사했다. 본국의 이른바 '건전한 방임' 정책의 탓도 있었지만 식민지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 중 본국 정부에 의해 거부된 것은 불과 5%였고, 총독과의 권한 투쟁은 대체로 식민지 의회에 유리하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는 식민 초기의 단순성이 사라지고, 식민지 사회 내부에서의 계층분화가 진행되어 식민지 내의 토착귀족계급이 형성되고, 구제도 사회를 지향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식민지 전체를 통해 자유와 자치가 확고한 전통으로 뿌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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