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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사

절대왕정시대

by 챠곡 2023. 2. 15.

절대왕정시대

1) 절대왕정의 성격

 국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유럽사에서는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친 시기를 절대왕정 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는 유럽 사회가 중세의 봉건사회를 탈피해 근대화 단계로 접어든 시기로서 유럽의 근대적 발전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면에서 근대적인 발전이 두드러졌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봉건적인 요소나 세력이 남아 있는 시기로서 그러한 봉건적 잔재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시민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일소되어 19세기에 근대적인 시민사회가 확립되었다.
 그러면 절대왕정의 특징과 성격은 무엇인가? 첫째, 이 시기의 정치체제를 가리켜 절대왕정이라고 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왕권이 절대적이라고 할 정도로 강대했고, 따라서 그 정치는 자의적인 전제정치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아직도 불완전하지만, 중앙집권과 국가통일이 상당한 정도로 달성되어 근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셋째, 통일된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관리가 필요했고, 국내 치안을 유지하고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방위하기 위해 군대 또한 필요했다. 그래서 근대 국가의 두 기둥인 관료제도와 상비군 제도가 발전하게 되었다. 넷째, 국가의 통일적인 통치를 위해서는 재정과 통일적인 통치기구 등이 필요하여 조세제도가 마련되고 중앙의 통치기구와 통일적인 사법제도 등 근대적인 여러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와 같이 절대왕정은 근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나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인 국민국가는 아니었다. 절대왕정에서는 왕조적 이해관계와 국민적 이해관계가 미분화 상태에 있거나 오히려 왕조적인 이해관계가 앞서는 형편이었다. 당시의 관료나 군대도 본질에 있어 국가나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절대군주를 위한 관료요 군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학자는 절대왕정 국가를 왕조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절대 왕정기에는 근대적인 세력이 발전하는 반면 봉건적인 세력이 남아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양자가 균형을 취하고 그 균형 위에 절대왕권이 군림할 수가 있었다. 이를 사회, 경제면에서 본다면 상공업이 발달하여 근대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시민계급 내지 중산계급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측면에서 크게 활약하게 된 반면, 농민의 봉건적인 부담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도시에는 길드 제도가 남아 있었으며, 봉건귀족은 과거에 가졌던 정치권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으뜸가는 지위와 신분을 유지하며 특권계급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낡은 세력과 새로운 세력의 균형은 매우 불안정한 것이었으며 날이 갈수록 근대적인 세력이 강대해져서 결국은 봉건 세력과 절대왕권이 무너지게 되었다.
 2) 중상주의
 절대왕정은 정치권력이 분산되어 있던 봉건국가와는 달리 많은 국가수입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 각국은 중상주의로 알려진 일련의 경제정책을 채택했다. 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나라에 따라 서로 달랐지만, 그 일반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세기 이후 유럽의 경제는 자연 경제에서 화폐경제로 전환하게 되고 근대에 들어오면서 화폐의 중요성은 날로 증가했다. 당시의 화폐는 금, 은 등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초기의 중상주의는 화폐인 금이 바로 국부를 표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금을 모으고 보유하려고 했으며 이를 중금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금을 산출하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고 에스파냐와 같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많은 금이 들어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금을 직접 획득할 길이 없었다. 그러한 경우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으로부터 물건을 적게 사들이고 그 대신 외국에 물건을 많이 팔면 그 차액만큼 금이 떨어지게 될 것이므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대시켜 그 차액을 얻는 방법이다. 이것이 무역 차액설로서 구체적으로는 보호관세를 부과하여 수입을 억제하고 국내의 상공업을 보호, 육성하는 정책이 채택되었다.
 이것이 절대왕정의 경제정책인 중상주의로서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무역 차액은 결국 국내 공업의 발달 여하에 달려 있다. 수입대체상품의 국내 생산은 물론이고, 특히 수출 공업의 육성과 보호가 관건이 된다. 따라서 중상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상업에 중점을 둔다기보다 오히려 공업의 육성과 보호에 역점을 두게 마련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시된 것은 해외 식민지였다. 신항로의 개척으로 유럽인은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방면에 진출하게 되고 식민지를 획득하는 경우 국내 공업에 필요한 원료를 손쉽고 값싸게 구할 수 있고 국내 생산품을 유리하게 판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식민지와의 무역 그 자체가 본국 상인들에게는 아주 유리한 것이었다. 따라서 각국은 해외 식민지 획득에 열을 올리고 일단 식민지를 얻으면 본국의 공업가나 상인에게 유리하게 식민지에 여러 제약을 가하며 통제했다. 이러한 식민지 정책도 중상주의의 중요한 정책 내용의 하나로 지적된다.
 이상은 경제정책으로서의 중상주의의 주된 내용이지만 중상주의는 이러한 경제정책을 넘어서 국가통일과 국력 증대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은 국가건설의 포괄적인 체제요 이론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렇듯 중상주의는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국가의 간섭과 통제, 보호와 육성을 뜻하는 정책과 체제였으므로 이를 국가주의라고도 하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재상이었던 콜베르가 체계적으로 전형적인 중상주의를 실시했기 때문에 콜베르주의라고도 한다.
 중상주의는 후에 자유방임주의의 입장에서 비난과 공격을 받았으나 국내 상공업이 미약하고 부르주아지(시민계급)가 아직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던 근대 초기에는 나름대로 역사적 사명과 필요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히 해외 발전이나 본국의 상공업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식민지 획득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후원이 불가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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